존 칼빈에 대한 비판에 대한 반박
*예전에 존 칼빈에 대해 비판하는 다큐방영과 인터넷상에 떠도는 루머들이 많아 이에 해설,반박한 글입니다.
칼빈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전해진 내용은 최근에 다큐로 방영되어 국내에 이슈화되고, 최근 여러 매체를 통해, 특히 안티들에 의해 전해지는 내용입니다.
문제는 이들이 말하는 주장에 대한 펙트가 어디서 나오것이냐가 문제인데요.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다른의견을 가질 권리 '에서 나온 내용입니다.
그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글은 당시 이단으로 단죄되어 처형된 '세르베투스'의 추종자들이 쓴 글과 매우 유사합니다.
(평화주의와, 인문주의적인 글을 쓰기위해 세르베투스의 추종자들의 자료를 채택한것으로 보입니다.)
☞대표적으로 카스텔리오의 '이단자에 관하여'라는 책이 주축에 자리잡고 있습니다.(카스텔리오에 관해서는 맨 밑에 따로 정리할께요.)
그럼 칼빈이 '세르베투스'를 처형한 것은 사실이 아니냐 할 수 있는데, 이 일에도 칼빈이 주동하고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쳐서 된것이 아닙니다.
당시 세르베투스는 정통 기독교 신학을 거부하고 이단 사상을 주장하다가 이미 '스페인'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파리로 도피하던중에 칼빈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습니다.
칼빈은 세르베투스에게 기독교강요를 보내어 바른신앙으로 이끌고자 하였지만, 세르베투스는 그 기독교강요의 여백에 칼빈을 경멸하는 낙서를 가득써서 돌려보냅니다.
이후 세르베투스는 '기독교 재건'이라는 책을 은밀하게 출판하여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밝혀 이번에는 '비엔느'에서 다시 이단으로 단죄되어 사형집행전에 제네바로 도망갑니다.
세르베투스는 칼빈의 반대파를 이용하여 이를 물리치려고 제네바에 왔고 칼빈은 세르베투스에게 제네바로 오지말라고 간곡하게 부탁하였지만, 결국 1553년에 체포되어 사형으로 화형을 받습니다.
체포후 재판과정에서도, 세르베투스는 칼빈이 제네바에서 추방당하면, 칼빈의 모든 재산을 자신이 가질것이라면서 주제 넘게 이야기하기도 했으며, 이 세르베투스를 '제네바 시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화형에 처할 것을 결의합니다.
이단 사상은 당시에 영혼을 살해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사람을 죽이는 살인과 동일시 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칼빈은 이에도 좀더 인간적인 방법으로 '참수'할것을 요청하지만 시의회는 칼빈에게 적대적이였기에 무시하고 화형을 집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칼빈이 제네바 시의회에 영향을 줘서 극악무도한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슈테판 츠바이크와 세르베투스의 추종자와 인문주의자들의 주장이 틀리다는 근거를 말하겠습니다.
우선 그들이 말하는 대로 제네바 시의회가 칼빈과 그렇게 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네바 시의회는 설교를 길게 하는 목사를 제재했으나, 칼빈은 길게했고, 목사들이 금식을 선포할때 그 배경을 조사하고, 칼빈의 편지를 가로채서 읽은 후 칼빈에게 해명하라고 소환하기도 했습니다.
1553년에는 칼빈의 교회에서 출교당했던 '베르텔리에'가 성찬을 받을수 있도록 시의회에 요청하자, 시의회는 허락하여 칼빈을 괴롭혔습니다.
칼빈은 출교당한자에게 결코 성찬을 줄 수 없음을 강력하게 주장했고, 다시 제네바를 추방될 것으로 예측하고 송별설교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칼빈을 시의회에서 1555년도까지 괴롭혀왔죠.
칼빈을 시의회에서 등돌려 있는 상태에서 어떠한 힘도 가질 수 없기에 칼빈이 임의로 그러한 행동을 취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됩니다.
정리하자면,
1. 칼빈에 대한 비판은 당시 처형된 '세르베투스'의 추종자들의 글을 옮긴 '슈테판 츠바이크'의 '다른의견을 가질 권리'에서 나온 편파적인 평론이다.
2. 칼빈은 다시 화형을 처한 세르베투스에게 조차도 최대한 관용을 베풀었으나, 세르베투스는 오히려 칼빈을 모욕했다.
3. 칼빈은 당시 화형을 만장일치로 재판한 제네바 시의회와 서로 적대적이고 견재하는 관계였다.
4. 칼빈은 제네바 시의회와 서로 적대적이여서 임의로 어떤 결정을 내려 사람을 처형할 능력이나 영향력조차 있질 못했다.
5. 세르베투스는 제네바에서 재판받기전 이미 스페인과 비엔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였다.
6. 당시 이단사상은 사람의 영혼을 죽이는 것으로 간주하여 사람을 실제로 죽이는 살인과 동일시 했다.
※카스텔리오에 관해...
- 당시 교장출신으로 구약의 '아가서'가 세속적인 사랑의 시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고, 사도신경의 그리스도의 지옥행에 대한 표현도 인간 대표로 하나님의 심판대에 오르신 그리스도가 겪어야 했던 지옥의 고초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칼빈은 카스텔리오가 하나님의 말씀을 모독하고 있다고 여겨 목사직을 받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인간 대표로써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낮아지심으로 인간의 죄값인 지옥을 경험하신 것입니다.)
- 세르베투스가 화형으로 처형된 후 '이단자에 관하여'라는 책으로 '세르베투스의 처형'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며, 세르베투스를 변호합니다.
- 당시 세르베투스의 처형을 옳게 생각했던 시의회에서는 이를 제지하고, 카스텔리오가 쓴 글 대부분은 그때 소각되었습니다.
(당시 시의회에서 칼빈파가 득세하기 시작했을 때였고, 이로 인해 당연히 칼빈이 그 타켓이 될 수 밖에 없었기에 어떻게든 칼빈을 타켓으로 트집을 잡아 '이단자에 관하여'라는 책을 쓴것입니다.)
- 수십년 후에 다시 그 글들이 복원되고 인쇄되어 현대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데. 그 중 대표작이 '이단자에 관하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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