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 어디로 가고 있는가?
Quo vadis, Calvine? 돌아감, 극복, 혹은 돌아감으로 극복하기 문병호(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1. 들음으로써 필자는 기독교 강요를 가르치면서 칼빈의 신학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얼마나 지대한가를 실감한다. 가득한 강의실의 후미진 곳에서 몇 몇 학생들이 청강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듣고 있다. 그들은 진정 칼빈을 듣기를 원한다. 칼빈이 대안인지, 근본인지, 돌아갈 곳인지, 아니면 그곳을 이미 우리가 거쳐 나온 것인지, 묻지 않는다. 그들은 칼빈을 극복하고자 하는가? 돌아감으로, 아니면 그냥 넘어섬으로? 우리는 한 번이라도 칼빈을 진지하게 바라본 적이 있는가? 그의 신학을 서너 개의 진술로 우리의 작은 메모장에 가두지는 않았는가? 그냥 우리가 정의하는 몇 가지 조목대로 칼빈은 존재..
2014.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