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교회의 신앙고백 표준 문서들

초기 칼빈주의자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신앙고백문을 만드는 데 헌신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혁주의자들은 신앙고백들이 단지 인간의 불완전한 통찰력을 나타내기 때문에 임시적인 성격을 지닌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신앙고백의 권위는 오직 본질적인 고유의 권위를 소유한 성경으로부터 연원되어야 하며, 반드시 성경에 종속되어야만 한다. 


오늘날 개혁주의 교회들이 가장 선호하고 열렬히 지지하는 7개의 신앙고백서들은 ‘벨직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도르트 신조’, ‘제2스위스 신앙고백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대요리문답, 소요리문답이다.



벨직 신앙고백서(네덜란드 신앙고백서) -1561  네델란드


  존 칼빈(1509- 1564)의 종교개혁이 진행 중이던 16세기 
네덜란드에서 작성된 개혁주의 신앙고백서이다.  라틴어로는 Confessio Belgica라고 불리는데, Belgica는 벨기에와 네덜란드로 나뉘기 전의 네덜란드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때문에 네덜란드 신앙고백은 벨직 신앙고백(Belgic Confession)이라고도 불린다. 도르트 총회에서 (1618-1619 년) 네덜란드 신앙고백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과 도르트 신조와 더불어 하나 되는 세 고백서로 채택 되어 개혁교회의 개신교 신앙을 대변하는 중요한 문서로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현존하는 일곱 개의 신앙고백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벨직 신앙고백서’의 주요 저자는 귀도 드 브레(1522-1567)이다. 16세기에 네덜란드의 개혁주의 교회들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협력자인 스페인 왕 필립 2세에게서 극심한 핍박을 받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1561년에 드 브레는 동료 목사들의 도움을 받아 ‘개혁주의 신앙을 고수하는 것은 국가에 대한 반역이 아니라 오히려 성경적 교리들을 고백하는 것으로서 법률을 준수하는 준법 시민이 되는 것’임을 증거하기 위해 이 신앙고백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결국 드 브레는 이단으로 정죄되고 1567년에 순교하였다.

‘벨직 신앙고백서’는 1566년에 앤트워프 종교 회의를 통해 개정되었고 네덜란드 국가 종교 회의에서 정식으로 채택되었다. 추후에 개정된 이후 도르트 종교회의(1618-1619)는 ‘벨직 신앙고백서’를 개혁주의 교회들의 모든 성직자들이 동의해야만 하는 교리적 표준서로 채택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1563  독일


 개혁주의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문답식으로 작성된 신앙고백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과 더불어 가장 영향력 있는 개혁주의 신앙고백으로 여겨지고 있다. 16세기에 독일의 선제후령(選帝侯領) 팔츠(Pfalz)에서 종교개혁이 진행되면서 당시 독일 팔츠를 다스리던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Friedrich III)는 성서 본문에 기반한 신앙고백 작성을 위해 위원회를 조직하였다. 프리드리히 3세은 젊은이들과 목사들과 교사들을 교훈하기 위하여 하이델베르그 대학의 신학교수인 28세의 자카리우스 우리시누스와 프레드릭을 위한 궁정설교가인 26세의 카스파 올레비아누스에게 개혁주의 요리문답을 준비하라는 사명을 맡겼다.

여기서 작성된 요리문답은 1563년에 팔츠의 수도였던 하이델베르크에서 열린 총회에서 채택되었다. 도르트 총회에서(1618-1619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네덜란드 신앙고백(1561), 도르트 신조와 더불어 하나 되는 세 고백서(Three Forms of Unity)로 받아들여졌다. 


개혁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오전/오후 예배 중 오후에는 요리문답에 기반한 설교를 준비해 왔는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가르치는 일이 목사 개인의 한계 또는 성향에 제한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오늘날엔 개혁교회들이 항상 이러한 방식을 채택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성서공부를 위한 중요한 문서 또는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1563년 1월에 열린 하이델베르그 종교 회의에서 승인되었고 이후 제4판이 오랫동안 이 요리문답의 공식 본문으로 간주되었다. 도르트 종교 회의를 통해 인가된 네덜란드어판은 이 제4판을 번역한 것이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여호와의 날’로 언급되어 있는 한 부분을 한 해 동안 매주일 설교할 수 있도록 52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놓았다. 또한 다른 신앙고백서들보다 더 많은 증거 본문들을 제시하고 있다.


‘비범한 권세와 아름다움, 공인된 대작’인 이 요리문답의 129개의 질문과 대답은 사도 바울의 로마서를 따라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째로, 참된 신자의 위로에 관한 감동적인 개론 이후, 제3문-제11문에서는 죄와 비참의 경험을 다룬다. 둘째로, 제12문-제85문은 사도신경과 성례에 대한 상당한 분량의 강해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속과 믿음을 다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86문-제129문은 주로 주기도문과 십계명의 연구를 통하여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구속에 대한 참된 감사(롬 12-16장)를 다룬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바젤 종교 회의(1568)와 엠든 종교 회의(1571)와 도르트 종교 회의, 헤이그 종교 회의(1586)를 통해 승인되었고, 네덜란드의 공식적인 세 가지 신조 가운데 하나로 채택되었다. 특히 도르트 종교 회의에서는 의무적으로 이 요리문답을 매주 설교하도록 규정하였다.



제2 스위스 신앙고백서-1566  스위스

‘제2스위스 신앙고백서’는 1562년에 하인리히 불링거의 개인적인 고백과 증언의 형식으로 시작되었다. 팔라틴 왕국의 선제후인 프레드릭 3세가 개혁주의 신앙의 강해서를 준비해 달라고 요청하자, 불링거는 그에게 ‘제2스위스 신앙고백서’의 사본을 주었다. 그러자 프레드릭은 그것을 독일어로 번역할 것을 명하였다.


‘제2스위스 신앙고백서’는 실제로 30개의 장과 2만여 단어에 육박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개혁주의 신학의 치밀한 교과서와 같다. 내용은 성경에서부터 시작하여 칼빈주의적인 조직신학의 중심으로 이동하면서도 실제적이며 경건한 문제들 역시 관심 대상으로 삼고 있다.


 

도르트 신조 ( Dordtse Leerregels)- 1619  네델란드 

1618-1619년 네덜란드에서는 다섯 가지의 주요 교리 논쟁에 대하여 도르트 종교 회의가 열렸다. 도르트 신조는 여기서 작성된 개혁주의 교리문서이다. 도르트 종교 회의는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국가 총회였음에도 불구하고 ‘도르트 신조’는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62명의 네덜란드 대표자들 이외에도, 영국과 스위스와 독일과 다른 다섯 개 국가에서 27명의 대표자들이 참석한 것이다. 당시에 라이든 대학의 신학교수인 야곱 알미니우스(1560-1609)는 몇 가지 중요한 요점에 대하여 칼빈주의자와는 매우 다른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1610년, 네덜란드 개신교도 중 알미니우스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개혁주의 교리,  특히 네덜란드 신앙고백을 부정하면서 네덜란드 개혁교회 측에 다섯 가지 이의를 제기하였다.  도르트 신조는 알미니안주의자들이 제기한 각 문제에 대한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노회(synod) 측에서  답변/결정을 담고 있다. 그것을 요약한 것이 소위 칼빈주의 5대 강령이다. 토르트 신조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과 네덜란드 신앙고백과 더불어 하나되는 세 문서라고 불리며,  네덜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미국 등의 개혁주의 교회의 신앙고백 문서로 채택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 1647  영국

개혁주의 신앙을 담고 있는 장로교회와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이다. 개혁교회의 중요 문서 또는 신조(Creed)로 많이 채택되는데,  현재 한국 장로교에서도 사도신조, 니케아신조 등과 더불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중요 문서로 삼고 있다. 신도개요서라고도 불린다.  1643년 영국 의회가 당시 국왕이던 찰스 1세와 의회와의 내란(청교도 혁명)중에  영국 교회가 공통으로 따를 수 있는 전례, 교리, 권징 등의 기준을 수립할 필요를 느끼고 회의를 소집하였다. 당시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교회 총대들과 의원, 정치인 등으로 구성된 "학식있고 거룩하며 분별력 있는 신학자들"이 성공회 교회인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 모였고, 이 회의는 5년 동안 지속되었다.  회의의 결과로 신앙고백서가 작성되었는데 이것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이다. 


이 회의의 결과로 신앙고백서 뿐만 아니라 대요리문답과 소요리문답 또한 작성되었으며  이듬해 영국 의회에서 공인되었다. 이 문서들은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에 의해 미국 장로교회(PCUSA)의 교리적 표준문서로 인정되었고, 한국에는 장로교 선교사들이 가지고 들어와 한국 장로교 교회의 표준문서로 통용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종교 회의의 신학자들은 세계에 산재한 모든 장로교회들을 교훈하고 지도하는 일에 심오한 영향을 끼쳤던, 교회 역사상 참으로 전무후무한 기념비적인 문서를 만들어 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소요리문답’과 함께 장로교주의에 관하여 칼빈의 ‘기독교 강요’보다 훨씬 더 심오한 영향을 끼쳤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언약 신학에 대해 중요한 견해를 제시한다. 총 33장으로 구분되는 이 신앙고백서는 신적인 지식의 근원인 성경에서 시작하여 상당한 분량의 하나님과 그분의 계획과 창조섭리, 타락의 문제를 다루고(2-6장), 은혜 언약과 그리스도의 사역, 구속의 적용 문제를 다룬다(10-18장). 이 문서에는 교회론과 성례(25-29장), 그리고 마지막 종말(32-33장)에 관한 문제뿐만 아니라 계명과 자유 등의 다양한 주제에 대한 세심한 견해가 담겨 있다.

양무리마을 갭투유님 게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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