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신학교육의 현실과 대안-박철수 목사(분당두레교회)
제목: 한국교회 신학교육의 현실과 대안

박철수 목사(분당두레교회) 2006.11


1. 한국교회의 현실
2006년 5월말 통계청의 종교 인구 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개신교가 -2% 성장한 반면 가톨릭은 74.2%성장했다고 발표했다. 『시사저널』10월 24일 호는 특집기사 「개신교는 왜 쇠퇴하는가, 한국 종교지형 대변동」으로 이 문제를 실은 바 있다. 개신교는 쇠퇴한 반면, 다른 종교 인구들이 꾸준히 증가했고 거기다 가톨릭은 74.2% 증가했다는 것은 충격적인 보고이다. 김준곤 목사는 개신교의 쇠퇴는 지난 20년간 한국사회의 종교 분야를 대표하는 최대 사건이라고 말했다. 우리 개신교는 그렇게 열심히 별의별 방법을 총동원했는데, 왜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오히려 그러한 열심들이 비기독교인들에게 이쁘게 보이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세계 50대 대형교회 가운데, 우리나라의 교회가 27개를 차지하는 놀라운 현상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기독교가 왜 이렇게 추락하고 있는가? 오늘의 현실에서 문제는 무엇보다 기독교가 비종교인들에게 무조건 밉게 보인다는 것이다.
「한미준 2004년 여론조사 보고서」에서 “한국교회가 이미지 전쟁에서 폐했다”고 규정하면서 교세확장, 헌금강조, 종교적 지도자의 자질 부족에서 원인을 찾았다. 해마다 3000개의 소형교회가 문을 닫는 반면, 대형교회는 문턱이 닳을 정도로 사람이 모인다. 한국교회는 후안 까를로스 오르티스 목사가 말하는 것처럼 부흥하는 것이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살이 쪘다. 건강하지 않다는 말이다. 감신대 이원규 교수는 기독교가 비종교인들에게 호감이 낮은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사회봉사,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데 인색하고, 전도활동이 지나치게 혐오감을 준다. 헌금을 너무 강조한다. 진리 추구보다 교세확장에 집착한다. 물량주의에 물들어 있다. 도덕적,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지난 10년 동안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전체 종교인이 2,373,000명이 늘었는데 그중 가톨릭 인구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2,195,000명이다. 그러니까 지난 10년간 거의 천주교만 늘었다고 볼 수 있다. 천주교 주교회의 김지용 팀장은 가톨릭의 성장원인으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지적한다. 가톨릭이 신뢰할 만한 종교로 자리매김했고, 다른 종교에 대해 개방적이며, 사회봉사 활동과 민주화에 헌신했던 것 그리고 비리 사건이나 추문이 다른 종교에 비해 적었던 것 등이다. 기독교의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실추되는 동안, 가톨릭의 이미지는 긍정적 이미지를 형성한 것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양적 침체와 질적 얄팍함 그리고 사회적 냉대라는 현실을 겸허하게 인정해야만 한다. 목회자들은 성공이라는 자신의 우상을 좇아 종교적 소비주의와 야합했다. 교회를 찾는 사람들도, 백화점을 찾는 소비자와 비슷하다. 목회자가 교회를 찾는 이들의 비위를 건들면 안된다. 그들의 입맛에 맛도록 설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종교 소비자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떠나버린다. 거기다 목회자들은 신자들을 몽매주의와 우민정책으로 다스리려 한다. 위에서 지적한 여러 가지 내용들로부터 한국교회가 벗어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2. 신학교의 현실
한국교회의 현실은 당연히 신학교의 문제를 제기한다. 신학교의 중요성은 미래의 한국교회를 짊어지고 가야할 일꾼들을 교육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한국교회의 희망은 전적으로 신학교 교육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 신학교 난립
신학교의 문제는 신학교 난립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나라에 있는 기독교 계통 신학교는 400여개를 넘는다. 거기에서 매년 7,000명 이상이 배출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예장 합동측과 통합측의 신학생만도 1,000명을 훌쩍 넘는다. 거기다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목회자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목회 현장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김성건 서원대 교수는 2005년 대학 자료 입시조사를 분석한 결과, “4년제 신학교는 1996년 보다 37개가 더 늘었고 100명 이하의 소형교회와 미자립 교회가 한국교회의 90%정도”라고 밝히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신학교의 입시과열이 심하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목회자들을 지금보다 더 많이 배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자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다. 중요 교단의 신학대학원 중 M,Div 출신의 경쟁률은 4.5:1정도일 뿐이다. 물론 그들 중에는 M,Div의 과정에 합격하기 위해서 여러 해 동안을 재수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필자가 앞에서 언급했던 ‘기독교 쇠퇴하고 있다’고 한 주간지 특집에서 본 바와 같이 개신교의 쇠퇴는 전적으로 목회자의 질적 수준의 문제이다. 가톨릭의 놀라운 성장도 가톨릭 목회자의 질적 수준이 개신교 목회자 수준을 능가하고 있는 현실을 바탕으로 한다. 거기다가 통상적인 사회인식 마저 목사를 무식하게 보더라도 신부들은 무식하게 보지 아니한다. 왜 그런가? 그들은 평범한 인재를 엘리트 교육을 통해서 훌륭한 목회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통상적 사회인식 속에서 이미 가톨릭 목회자들의 수준은 질적으로 개신교를 압도 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결국 신학교 난립에서 나온다.

2) 신학교 커리큘럼의 문제
총신대 정일웅교수는 한국 복음주의 신학 발표회에서, 이론 신학(성경, 역사, 조직)과 실천 신학(목회, 설교, 선교)과의 관련 과목이 균형 있게 돼야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필자는 3년 동안 더욱 더 신학이론을 철저하게 하고 거기에 10%-20%정도의 실천 신학 교육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면 실천 신학을 어디서 배울 수 있는가? 강도사가 되고난 다음 목사가 되기까지 최소 2-3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바로 이 사이에 강도사 훈련원, 목회자 훈련원을 만들어 신학교 졸업 후 목사 고시 이전까지 실천적인 훈련과정을 계속 하도록 한다. 강도사들은 목사가 되기까지 주일마다 교회에서 봉사하되, 최소 일주일 1회 100분 강의 정도는 목사의 도(道), 신앙의 깊이, 신앙의 목적, 실천 신학 등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배우도록 하는 것이다.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보지만, 감리교 신학교에서는 목사가 되기 위하여 아예 2년 이상을 시골 목회를 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2 단계 강도사 훈련 과정은 부담이 적고 더 좋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말한 과정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지만 더 확실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목사가 되도록 훈련하는 보다 더 강력하고 체계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

3) 목회자의 자질 저하
노치준 교수가 쓴 『한국 개신교회사』에서는 1990년 한국 기독교 교역자가 58,542명이었는데, 95년에는 98,905명이 늘어 불과 5년 동안 68,9%가 늘었다고 밝힌다. 아울러 이 같은 목회자 과잉 공급현상이 나타나는 데에는 일차적으로 목회자를 지망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측면이 있지만, 목회자 양성 기관의 과다가 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 교회의 교단 분열의 결과로 나타난 수많은 군소 교단들의 경우 1교단 1신학교의 원칙에 따라 많은 목회자 양성 교육기관을 설립했다. 이러한 신학교들의 운영은 거의 학생들의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다. 1990년 현재 군소 신학교에서 배출하는 신학생만 해도 5,000명이 넘는다. 반면 4년제 학력 대학 인정 신학교에서 배출하는 신학생은 1,500명이니 오히려 정교 신학교 보다 군소 신학교에서 더 많은 수의 목회자를 배출하고 있는 편이다. 이러한 대량 생산 시스템에서 입학하는 학생들의 수준을 거론할 필요도 없거니와 또한 졸업 후에도 사역지를 못 찾아 다른 업종으로 바꾸어 비목회적 사역에 종사하는 사람도 많다. 택시기사가 되어도 신학교를 다녀 성경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면 할 말이 없다. 그야 말로 어중이떠중이가 모여드는 상황이다.
신학생들은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들어온 것이지 실력이 없어도 괜찮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그러나 목회자가 될 사람은 최소한 총체적 인격에 대하여 점검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신학 지식의 습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은 말할 필요도 없다. 신학생은 사물을 정상적으로 인식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아울러 문학과 철학과 역사에 대한 식견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신학교 난립은 오히려 목회자의 질을 아주 나쁘게 할 뿐만 아니라 목사의 이미지를 나쁘게 하는데 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3. 대안
한국교회는 70-80년대 군부 독재시절 정의․ 평등․ 자유․ 인권과 같은 주제를 가지고 목회자들은 고민하고 청렴하고 비전이 높았던 목회자가 많았다. 그러나 70-80년대 고도성장을 이룬 다음에 개교회중심주의, 교회의 보수화가 만들어낸 사회적 문맹들이 1990년 이후 사회의 냉엄한 질타와 비판의 표적이 된 것은 부끄럽고 가슴 아픈 일이다. 우리나라 대형 보수교회는 어디를 막론하고, 독재정권에 아부하고 그들의 공공연한 편이 되었다. 이미 그것부터 잘못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 민족의 아픔이 무엇인지 전혀 보지 못하고 자기 중심주의적인 성장에 몰두했기 때문이다. 신학은 목회자를 통해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목회자들에게는 올바른 신학이 정립되지 않았고, 거기에다 신학생 시절부터, 1,000-2,000명이 모이는 교회를 개척하겠다는 거룩한 열정(?)으로 물들어 있다. 교회란 신학이 있는 곳이 되어야 하고, 그것은 신학교육을 받은 목회자들에게 육화되어야 한다. 신학교육이 짧은 3년 동안 이루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필자가 신학교를 다닐 때 교수님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교수님이 말하기를 “학생들이 신학교 들어올 때나 졸업할 때나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면서 탄식한 것을 보았다.
또 현장과 동떨어진 신학교육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신학교 3년은 짧은 시간이다. 어쩌면 신학공부만 해도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학생들은 거의 신학에 집중할 수 없다. 신학생 때부터 전도사로 활동하게 되고, 거기에 힘을 다 쏟다 보니 공부할 시간이란 아주 제한적이다. 거기다가 현장과는 동떨어진 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신학교 3년의 기간은 최대한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하고, 신학생을 위하여 개교회적 차원에서나 노회적 차원에서 장학제도가 잘 준비되어야 한다고 본다. 짧은 신학공부이지만, 인격적인 준비, 도덕적인 준비, 정신적인 준비, 영적인 준비가 꼭 가르쳐져야 한다. 목회자들은 지금 우선 목회 현장이 시급하니까, 당장 졸업해서 무슨 패스트푸드처럼 곧바로 쓸 수 있는 기능공 같은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필자는 신학생과 목사는 모름지기 실력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성경적인 내용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인문 교양에 대해서도 상당한 식견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학교에서 공부할 기간이 더 길어야 된다. 이러한 필자의 주장들이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하지 않고는 신학교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을뿐더러, 한국교회의 미래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신학교가 많은 학생들을 불러들여 장사되니까, 학생들을 마구잡이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문제이고, 실력 있는 교수들이 채용되지 않고 실리, 당파, 돈에 의해 등용되는 현실이 문제다. 신학교가 난립하다 보니까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신학교에는 우스운 사람과 우수한 인재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그래서 목사라는 사람들이 사기도 치고, 별짓을 다한다. 필자는 500백만에 가까운 가톨릭쪽의 신학교육의 실태를 보면서 많은 시사점과 대안들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우리 나라의 가톨릭 신학교는 7개 교구별로 한 개씩 있는데, 문공부 인가 정원이 조금 차이가 있지만, 90명 이내이다. 일년 입학정원을 전부 합하면, 400-500명 정도가 된다. 그리고 졸업생 중에서 30-40%가 여러 이유로 중간 탈락을 한다. 그러니까 일년에 신부가 300명 정도가 새로이 탄생한다. 또한 입학자격도 30대 이내로 제한되고 있다. 가톨릭 신학교는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으며, 1년에 한번씩 부모를 만나는 시간이 있다. 그들은 입학하자마자 핸드폰을 정지시킨다. 1학년을 봉쇄 구역의 하루라고 말한다. 2학년이 끝나면 모두 군대에 입학하되, 사병으로만 입대한다. 1학년때는 10명이 한방을 쓰지만, 한방을 쓰면서 공동체 훈련을 하지만, 또 3학년 때 부터는 독방생활을 하면서 영성을 훈련시킨다. 또한 성직자 청원서를 쓰는데 이것은 최종적 다짐을 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은 단 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사람들을 이 시간을 통하여 그만 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결정에 대하여 신중하게 생각하기 위하여 휴학하는 경우도 있다. 군대 생활까지 합쳐 10년이 되어서야 드디어 신부가 된다. 그러니까 신학공부만 7년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필자는 가톨릭 신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이런 질문을 던졌다. “우리 개신교에는 9백만명 되는 교인수에 대비하여 7,000명의 신학생을 배출하는데 비해서, 500만명이나 되는 가톨릭은 300여명의 신부가 배출되고 있다. 신부수가 너무 적게 배출되는 것이 아닌가?” 신부 대답이 “신자 대비 신부수가 매우 부족한 현실이지만, 그 대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신부가 질적으로 일정수준이 되야 한다는 점에 강조를 두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가톨릭의 신부가 너무 부족한 상태이지만, 이러한 가톨릭의 교육정책 때문에,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하소연을 했다. 필자가 사는 분당에 있는 수원교구에 속한 분당 요한성당은 동양에서 제일 큰 성당임에도 불구하고 신부가 모두 4명밖에 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필자는 가톨릭이 수직상승하는 것을 보고, 우리도 그렇게 하자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는 우리 개신교가 더 발전할 수 없다는 다급한 절망감 속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비종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자기가 앞으로 종교인이 된다면 어떤 종교를 택할 것인가’를 묻는 항에 가톨릭을 택하겠다는 응답자가 단연 높았다고 한다. 이것은 기독교의 미래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신학교 문제, 목사 수준의 문제, 성공 지상주의에 물들은 세속화 되는 현상을 보면서 우리 개신교는 과연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뼈를 깎는 회개와 결단 더불어 급진적인 구조조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기독교의 미래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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