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신앙 여정- 이어쓰기

 이 끄적거림의 공간은 여러분들에 저를 보여주기위함이기보다는 자신의 성찰과 하나님앞에 정직한 모습으로 서기위한 하나의 방편입니다. 그리고 기도와 재정으로 후원을 해주는 분들에게 저의 생각들을 나타내면서 객관적인 권면도 해주기 위한 바램입니다. 
 이글은 제 신앙의 여정을 한번 솔직하게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추억하고자 끄적거리는겁니다. 좀 읽다가 유치하시고 지루하시면 패스하시기 바랍니다. ^^

 어머니 등에 업혀 다니던 사당동의 관악교회에서부터 주일은 늘 빠짐없이 교회에 출석했고 주일학교때 가기싫고 부담되던 주일 오후예배에도 충실하게 다녔던것 같다. 아직도 기억하는것은 어머니가 오후예배를 가지 않았다고 좀 심하게 화를 낸적이 있다. 그때에 어머니에 대한 무서움 보다는 예배시간에는 꼭 가야한다는 고정관념이 생겼던것 같다. 

 초등학교2학년 강동구 고덕동의 한 주공아파트에 입주를 하게 되어 상가에 있는 통합측 개척교회에 다녔다. 사모님혼자 아이 4명을 앉혀놓고 주일학교 예배를 드렸다. 워낙 단지가 많은 아파트에 위치도 좋았고 80년대는 교회가 돗자리만 깔아도 사람들이 몰려든다는 그런 분위기였던 것 같다. 급격하게 성도수가 늘었다. 그곳에서 국민학교3학년부터 대학 졸업후 2년정도까지 다녔던것 같다. 초등학교때 많이 기억되는것은 반 선생님이었는데 그분은 교회에 대한 문제점을 늘 이야기했던 분이었다. 지금생각하면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교회선생님이 교회의 문제점들을 이야기 했다는것이 좀 놀랍게 느껴진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언제 한번 공과공부시간에 매우 흥분하시면서 인간이 예정된대로 산다는건 말이 안된다는 내용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예정론에 대한 깊은 반박이었던것 같다. 알미니안주의 신학쪽에 서계신 분이시라고 생각되지만 그당시 나는 그분의 흥분과 주장에 그냥 물음표였던것 같다. 그 선생님은 교회선배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지만 나는 그분을 생각하면 지금도 좀 물음표이다. 

 중고등부시절 좀 내성적인 성격이었던지라 고등학생 선배들의 열심앞에 더 주눅이 들었던것 같다.주일날 별로 교회에 가고싶지 않았지만 그때 어렷을때부터 교회에서 항상 친했던 동진이 명철이도 교회에 다녔고 성훈이 재범이..중학교 친구들도 늘 같이 했기에 그게 좋았던것 같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고등학생이 되면서 중고등부에 임원이 되어야만 했고 그저 신앙이 좋기보다는 교회에 늘 안빠지고 충실히 다닌결과 중고등부 회계와 회장을 하게 되었다. 중고등부때 기억하는것은 전도사님들의 존재다. 몇분이 거쳐갔는데 참으로 가난하고 열심이 넘치는 전도사님들이었다. 

 한번은 전도사님이 토요일 오후에 성경읽기 모임을 시작하셨고 임원인지라 의무적으로 참석을 했다. 그리고 수원에서부터 서울 강동구까지 학생들이 별로 참석하지도 않는 그 모임에 열심히 오시는 전도사님을 생각해서 안갈수가 없었다. 그때 기억중의 하나가 창세기를 읽고 레위기를 읽는 중이었는데 항상 지루하고 재미없고 참 읽기 어렵다는 느낌이었는데 성경이 매우 수월하게 읽히고 내용을 잘 인식하면서 읽게 되었다는것이었다. 그 전도사님께서 한번은 동계수련회를 신약통독수련회를 한적이 있었는데 비슷한 경험을 했다. 

 80, 90년대의 한국교회 중고등부의 문화는 '문학의 밤'이라는 발표회형식의 행사이다. 다닌 교회에서는 '찬양과 간증의 밤'이라는 행사를 했는데 주변의 교회들이 함께 방문해주고 함께 준비하면서 가슴 설레기도 했던 추억이었던 같다. 찬양과 간증의 밤인데 간증은 없고 찬양과 꽁트, 성극만 기억이 난다.^^
 그리고 여름수련회는 그당시 한국교회의 경건주의와 빌리그래함식 복음주의가 유행했었기 때문에 선생님들도 CCC단체의 영향을 받으신분들도 많았고 구원받고 구원확신, 방언, 체험에 대해서 참 많이 강조한것 같다. 지금도 별반 차이가 없는듯 하다. 한번은 중학교때 교회선생님이 너희들은 구원을 받았는냐? 그러면 구원의 확신이 있는냐? 를 정말 과도하게 강조하셨다. 그때도 그랬지만 참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인것 같다. 
 한번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라는 주제로 여름수련회를 했는데 수련회 끝나고 집에 가면 TV도 보지말고 가요도 듣지말라라고 했었다. 대중미디어를 완전히 등지는것이 이세대를 본받지 않는 아주 좋은 적용이라고 생각했던것 같다. 순진한 나는 그렇게 좋아하던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도 끊고 TV도 당분간 보지 않았다.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이문세4집도 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세상과 교회를 아주 유치한수준에서 분류하고 관계를 끊으라는 이원론을 대놓고 가르쳤던것 같다. '낮은 울타리'에서 뉴에이지 반대와 문화사역을 많이 했는데 그때 교회의 분위기 자체가 이원론으로 흘러가기 좋은 분위기였던같다. 

 지금 돌아보면 공과공부시간과 수련회때 했던 교회선생님들의 말이 정말 기억에 많이 남는다. 교회에서 교사의 역할의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중고등부 회장을 하고 있을때 중고등부가 여러모로 분위기가 좋았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한 중고등부 선생님이 이런말을 한적이 있다. "명일동에 있는 명성교회(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초대형교회였다.)에 가면 너희들은 임원도 하지 못할꺼야. 지금 상황에 만족하지 말고 열심히 해라" 그 말을 들을 당시에는 그냥 심각하게 듣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상처가 되었고 그분이 과연 교사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학생들에게 과연 무엇을 가르쳐주고자 함이었을까? 

 후회가 되기도 하지만 고등학교때 중고등부 임원을 하면서 학교공부보다는 교회일에 관심이 더 관심이 많았고 교회에 있는 시간들이 많았다. 균형이 상실되었던것 같다. 한계가 있기도하지만 사역자, 교사들이 그러한 균형을 잘 찾아주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아직 가치관 세계관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는 다음세대이기때문이다. 

 그당시 주찬양, 옹기장이, 다윗과요나단, 꿈이있는자유, 두란노 경배와찬양, 박종호, 송정미, 소리엘....복음성가의 부흥기였던것 같다. 교회마다 찬양단을 초청하기도 했고 교회안에서 한국가스펠을 참 많이 불렀던것 같다. 개인적으로 처음에 주찬양3집의 찬양을 접하면서 용돈을 모두 긁어모아 가까운 음반집에 주찬양 1집에서부터 5집까지인가 테이프를 주문했었던것 같다. 테이프가 닳도록 들은것 같다. 지금도 그때의 찬양을 들으면 감동이 밀려든다. 외국곡 번역과 워십곡위주인 요즘이 좀 아쉽다. 

 고3이 되었고 이과를 선택한 나는 이과계열 과목이 나한테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학교에 다녔다. 성적도 잘 안나왔다. 대학입시는 처음으로 수능이 시작되었다. 첫수능세대 1차, 2차 시험중에 좋은 점수결과로 학교에 지원하는 것이었다.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중고등부 회장출신들이 바로 대학교에 입학했다는 전례가 있어서 나도 그저 재수는 하지 않는게 좋다고 생각했다. 전기대에 떨어지고 후기대를 찾다가 지방에 있는 대학에 지원하게 되었고 이과중에 전산학과를 선택했다. 

 대학입학과 동시에 오리엔테이션과 함께 대학문화를 접하게 되었는데 자유도 있지만 술문화가 참 쉽지 않았다. 술, 담배는 하지 않는 것이 크리스천의 절대윤리라고 이야기되던 때였고 술, 담배가 금기된 분위기지만 교회선배들은 보이지 않게 하면서 후배들에게도 해도 괜찮은식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뭔가 자신감없이 권하는 이상한 분위기였다. 그때 느낀것이지만 신앙의 선배들에게 배우는 삶의 행동방식에 매우 큰 영향을 받는다는것이었다. 교회선배들이 하면 괜찮은것이라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다. 대학교에서 검도부에 들어가고 싶어서 잠도 설치며 고민했지만 제사비슷한것을 지내는것과 술마시는 분위기가 있어서 포기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유치한 고민이었다. 후회된다. 원래부터 운동을 워낙에 좋아해서 학과 축구부에 들어갔다. 거의 예비역이 주전인 분위기에서 주전으로 뛸수있는 기회도 많이 주어졌고 매주 하는 훈련이 좀 힘들었다. 게임에 지면 몇십바퀴운동장을 뛰어야 하고 경기모임이 끝나면 늘 술과 밥을 먹는 분위기였다. 

 대학생활과 지방에서 자취생활을 처음 접하면서 전공에도 관심이 안가고 학교는 후기대라 그런지 주변 사람들은 학교에 다니고싶어한다기보다는 마지못해서 다니거나 편입을 목적으로 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신앙적으로도 혼란한 상태에서 동아리중에 선교단체를 찾았다. 그당시 기독교관련단체는 서너개정도밖에 없었고 기독학생회모임 비슷한것이 있어서 수요예배를 강의실에서 드렸다. CCC를 찾아갔는데 그당시 내 기준에서는 매우 새롭고 충격이었다. 대학안에 그런 모임을 하고 있는것이 좀 신기하기도했다. 그날 첫날 찾아갔을때 CCC지체들끼리 사랑방이라는 공동체생활을 하고 있는곳에 가게 되었는데 함께 생활하면서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 좀 놀랬다. 그러면서 한 선배와 연결이 되고 자연스럽게 학생선교단체에 가입이 되었다. 

 CCC에서 처음 하는 성경공부는 중고등부때 하던 공부와는 큰 차이는 없었지만 쉽고 단순하게 한단계씩 배우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면서 노방전도와 4영리라는 전도소책자를 들고 캠퍼스 안의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는데도 따라다녔다. 그러면서 예비순장교육을 간사님한테 배우고 매주 정기모임 천안 주변의 대학교들이 모이는 채플과 리트릿을 하면서 전도, 선교에 대한 개념과 실천을 경험하면서 내게는 대학생활하면서 가야되는 길로 생각되고 단순하게 쫒아간것 같다. 



 --다음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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